Lacquer Painting · 칠화
120 × 120 cm

“나는 칠예술은 시간의 미학이고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생각한다. 조형예술에는 여러 가지 분야가 있고 수많은 재료가 사용되지만 칠 작업처럼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분야도 드물 것이다. 옻나무의 생장, 칠의 채취와 정제, 칠의 건조, 갈고 닦고 칠하는 수십 차례 반복되는 작업과정 등 오랜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 칠예술이다. 어느 한 과정도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작업환경과 기후의 변화에 따른 온도와 습도의 조절, 엄밀하게 계산된 작업 과정 등 매순간마다 한결같은 시간과 정성을 기울여야 되는 것이 칠예술이다. 그렇기에 칠작업의 모든 과정은 시간의 기록이며 시간의 축적이다. 기다림이 따라야 한다. 칠은 시간을 들이면 들인 만큼 작품의 완성도나 깊이감이 우러 나오는 작업이다. 어느 분야의 작업이든 공을 들이고 많은 시간을 들인다면 그만큼 효과가 있겠지만 칠 작품은 특히 시간의 흔적 자체가 그대로 축적되어 나타난다.”

최영근은 전통적 나전칠기와 목기를 현대적 미감과 형식으로 재정립하는 데 열정을 다해온 칠공예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비단 그의 예술이 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는 다재 다능한 예술가로 시각예술, 평면, 입체, 공간 등 디자인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이뤘다. 다방면에서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관심을 보이는 그가 가장 선호하는 분야가 칠예술일 뿐이다.

1948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그는 1968년 홍익대학 미술 대학에 입학해 목공예와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같은 대학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인테리어를 전공했다. 1972년 대학 졸업 후 목공예작품을 계속하면서 나무의 성질로 음영을 표현하는 ‘영채기법’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이를 적용한 작품으로 대한민국미술대전 공예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영채기법을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전통 칠에 대해 구체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통을 외면하고 새로운 것만을 쫓을 수는 없다는 생각과 현대 조형예술 속에서 전통 칠의 가치를 새롭게 찾아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칠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는 첨단과학의 시대, 서구가 이끌어가는 현대문명 속에서 우리의 전통과 동양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서구의 조형예술을 받아들일지 항상 고민한다.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니면서도 미적 담론조차 존재하지 않은 칠 분야에서 미적 담론을 유도해내고 새로운 조형을 탐구하는 과정은 길 없는 길, 끝없는 길을 가는 것 같았지만 그는 칠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의 후기 작업은 1990년대 이후 집중적으로 칠을 보여준다. 1987년부터 한남대에서 칠 교육을 시작하면서 칠의 질료적 속성에 대한 재발견이 성찰적 세계로 끝없이 반복 재생산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칠예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주적 공간과 시간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생칠에서 나오는 검은 색은 그저 ‘검다’는 것을 넘어 깊은 어둠을 표현한다. 그가 작품에서 사용 하는 나전의 눈부신 아름다움은 태초의 빛과도 같다. 미세한 손놀림을 통해 그는 작품 속에 우주, 빅뱅, 태초, 빛, 탄생 등 평범함을 뛰어 넘는 스케일을 담아낸다. 신의 존재, 우주의 창조, 생명의 기원, 영혼의 자유 등을 완성도 높은 손맛과 미적 사유를 통해 훌륭한 그림으로 표현 한다. 시간이 층층이 쌓이고 수를 셀 수 없는 붓질이 녹아든 검은 칠의 세계는 우주와도 같이 신비롭고 영롱한 빛을 탄생한 작품은 태초의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Biography

1948년에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났다. 1968년에 홍익대학 미술대학에 입학 하여 목공예와 산업디자인을 전공하였고, 홍익대학교 산업미술 대학원에서 인테리어를 전공하였다. 1980년부터 33년간 한남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2009년부터 4년간 중국 청화대학교 심천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1972년에 대학을 졸업한 후에 목공예 작업을 계속하였으며,1984년 독자적으로 개발한 영채기법으로 제작한 목칠 작품으로 제3회 대한민국미술대전 공예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한국의 전통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1987년 무렵부터 한남대학에서 칠 수업을 시작하였다. 199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현대 미술전>(국립현대미술관), <대한민국미술대전 수상작가전>, <제24회 서울올림픽기념 한국현대미술전>, <예술의전당 미술관 개관기념 초대전> 등에 출품하였다. 부산, 대전, 광주, 일본의 도쿄, 교토에서 열린 <한일 현대칠예전>에 참가하였으며, 1994년 1996년 서울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과 북경 중국미술관에서 <한중 칠예교류전>을 가졌다. 2002년 이시가와 국제 칠전에서 금상을 수상하였고, 2003년 가나자와에서 열린 월드 컴페티션 오브 아트 앤 크래프트(World Competition of Art and Crafts)에 출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