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cquerware inlaid with Mother-of-Pearl · 나전모란당초문합
9.5 × 16.8 × 16.8 cm

세계적으로 공예 분야에서 칠기는 일본을 최고로 치지만 조개 껍질을 얇게 갈아서 붙이는 나전은 한국을 따라올 나라가 없다. 한국에는 많은 나전장인들이 있고, 최상훈은 그들 중에 서도 자개를 문양형태로 오려내는 줄음질에서는 최고의 권위자로 꼽힌다. 그의 작품은 정교함의 극치를 이루는 소품 위주로 작가주의적인 특성을 지닌다. 초등학교 교육을 끝으로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은 그는 13세에 나전에 입문해 49년 간 오로지 외길을 걷고 있는 나전칠기 자개쟁이이다.

그는 1954년 서울의 하왕십리에서 태어났다. 당시 하왕십리는 나전칠기 공방과 재료상들이 밀집한 곳으로 서울에서 생산되는 나전칠기의 본거지였다. 그가 태어나 자란 1960년대 후반 황학동 일대에 수백 개의 자개 판매상이 들어서 명소가 되어 옻칠의 나라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이 일부로 찾을 정도였다. 한집 건너 자개공방이었던 동네에서 자란 그는 자연 스럽게 자개공방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1966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인의 소개로 유영수 나전칠기 공방에서 나전칠기에 입문했다. 본격적으로 나전칠기의 매력에 빠진 것은 1969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4호 나전칠기장 민종태 선생이 운영하던 ‘동화사’ 공방에 문하생으로 들어가면 서 부터이다. 그곳에서 19년간 나전과 관련한 모든 기능을 전수받고 1989년 독립하였다.

이름도 없는 자그마한 개인공방에서 동료도, 조수도 없이 혼자 작업으로 25년간 작품을 제작하며 각종 공모전에서 수십 차례 입상해 이름을 알려왔다.

자개를 문양대로 조각칼이나 송곳, 가위, 실톱 등으로 오려 내는 줄음질이 전공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사용되는 모든 기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의 작품은 작지만 섬세하다. 미세한 곡선으로 이어진 크고 작은 문양들의 높은 완성도를 보면 탄성이 절로 난다. 현재 서울 북부의 용답동에 작은 공방을 가지고 혼자 작업하는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보물은 스승인 민종태 선생이 생전에 작업하면서 남긴 수백 장의 드로잉 원본이다. 초기 드로잉은 누렇게 바래어 바스라질 정도이다. 스승의 손때가 묻은 원본 도안에는 1970~80년대 나전칠기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전장의 도안화첩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살아있는 교과서이다. 최상훈은 작은 공방에서 혼자 고집스럽게 나전칠기의 전통 계승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지만 그는 외롭지 않고, 좌절하지 않는다. 스승이 항상 함께 하기 때문이다.

Biography

1954년 서울 출생으로 민종태 선생으로부터 사사 받았다. 나전칠기공예 명인 으로 지정되었고, 한국 옻칠공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전국공예품 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입선 및 장려상 등을 17여 회 수상하였다. 중요무형문화재 특별전에 참여하였고, <옻칠전>(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한국의 나전과 칠예전>(이태리 로마 국립박물관), 뉴욕에서의 <나전옻칠전>과 <나전옻칠과 국악의 어울림전> <천년의 신비전> 등과 프랑스 <파리국제박람회>에 참여하였고, <한국나전>, <옻칠 21인전>, <인사아트페어>, <한국 나전칠기 근현대작가 33인전> 등의 그룹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