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ss Kettle · 유기 주전자
17 × 19 × 13 cm

18세기 실학자 유득공은 『경도잡지』에서 조선시대 후기 서울 사람들의 생활상을 소개하면서 식생활과 기물과 관련해 ‘사람들은 놋그릇(유기)을 중시하여 반드시 밥, 국, 나물을 담는 일체의 식탁용 그릇을 놋쇠로 만든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지속적으로 유기를 사용해오고 있다. 식기류 외에도 대야, 요강, 촛대, 향로 등 일상생활의 기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되었고, 종교적으로도 불가의 바라, 종, 제기 등을 놋쇠로 제작하였다. 농악대를 위한 꽹과리와 징도 빼놓을 수 없는 유기 제품이다. 농악기 중 징은 ‘바람소리’라 하며, 소리가 가장 멀리까지 울리는 악기이다. 징은 여러 소리를 아우르는 기운을 가진 악기라 하여 집에 걸어 두면 잡음 없이 늘 화평하다는 믿음으로 집집마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우리 농촌의 삶과 가까웠다.

징장 이용구 선생이 태어난 함양은 평야로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 때문에 예부터 농악이 발달했다. 더구나 함양은 유기 제작의 고장으로 명성이 높았다. 두드려서 만드는 방짜 유기의 최고 전문가들 손에서 만들어진 함양징은 소리가 좋기로 유명했다.

이용구 선생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징을 만드는 징점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낮에는 잔심부름과 설거지를 했고 모두가 잠든 새벽에는 몰래 밖으로 나와 징을 만드는 일을 흉내 내곤 했다. 그러던 중 함양징의 큰 맥이었던 최고의 징장이 오덕수 명장 밑에서 본격적으로 징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평생을 바쳐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그는 검정고무신에 코피가 고여도 모를 정도로 징 만드는 일에 즐거움을 느꼈다고 한다.

경제개발연대인 1970년대 우리 전통 문화의 입지가 점점 좁아 지면서 징 만드는 일을 잠시 접어야 했지만 그는 1986년 거창에 터를 잡고 오부자공방을 열었다. 오직 최고의 징을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쉼 없이 놋쇠를 두드린 결과 1988년 전승공예대전을 시작으로 3회 연속 수상의 기록을 남겼다. 1991년엔 이어령 당시 문화부 장관이 추진한 ‘한국표준징소리 찾기 사업’에서 그가 만든 방짜징이 우리나라 최우수 징으로 선정되며 국립국악원에 영구소장되기도 하였다. 1993년엔 경상남도 무형문화제 제14호 징장으로 지정되며 우리나라 최고의 징장이 되었다.

‘쇠는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강하다’는 말처럼 방짜징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천 번의 망치질이 필요하다. 구리와 주석을 78대 22의 정확한 비율로 혼합하고 1200℃ 이상에서 용해 하는 것은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지만 징의 형태를 잡는 공정은 그릇과는 차원이 다른 섬세함과 노력이 필요하다. 밤 11시부터 아침 6시까지 담금질을 해서 쇳물의 색을 맞추고 원하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두드리며 소리를 잡아야 한다. 단순히 망치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소리를 들어야 만들 수 있다. 24년 동안 방짜징을 만들어 왔지만 여전히 소리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2005년 징장 전수자인 막내아들 이경동 장인이 가업을 이으 면서 ‘두부자공방’으로 상호를 바꿨다. 2012년에는 전통을 이으면서 현대에서 사랑받는 디자인의 유기를 추구하는 ‘놋그릇가지런히’ 브랜드를 만들고 ‘놋이공방’을 차렸다. 이용구 선생은 여전히 공방에서 징과 놋그릇을 만들며 방짜 징 만드는 기법을 전수하고 있다.

Biography

1936년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났다.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 징장으로 70여 년 동안 최고의 방짜징과 그릇을 만들어왔다. 1986년 거창에 오부자공방을 열었고, 1988년 <전승공예대전>을 시작으로 3회 연속 수상 하였으며 1991년 <한국표준 징소리 찾기 사업>에서 우리나라 최우수 징으로 선정되어 국립국악원이 영구 소장하게 되었다. 1993년에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 징장으로 지정되었고, 1995년에는 경상남도 공예품 개발업체로, 1998년과 2000년도에는 각각 장고와 사물북으로 경상 남도 추천상품으로 지정된 바 있다. 공예품 경진대회에 참여하여 최고의 징장으로서 여러 차례 수상한 바 있으며, 2008년에는 <파리 국제 박람회>에 참가하였다. 2012년 징 장 전수자인 아들 이경동과 함께 놋이 브랜드를 론칭하여 지금도 공방에서 징과 놋그릇을 만들며 아들에게 최고의 방짜징과 놋그릇 만드는 기법을 전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