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 설치뷰, 2014

원래 한지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됐으나 조선 후기 들어 새로운 용도가 추가 되었다. 선비들이 글을 읽다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글씨 연습을 한 종이를 잘라서 꼬아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을 만들었다. 한지를 비비고 꼬아 만든 종이 노끈을 이용한 지승공예 작품은 자연스럽고 질박한 한국의 미의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 지승은 한지가 귀한 시절에는 양반 지식층에 그 제작과 쓰임새가 국한 되었지만 종이가 보급화된 이후에는 서민층까지 널리 보급 되었다. 조선조에 성행했지만 근대들어 도자, 목기, 유기 등 여타 공예에 비해 보급과 전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분야이다.

이영순은 명맥이 사라져가는 지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확대하고 재생산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목받는 작가이다. 지난 30년간 전통지승 미학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동시에 지승 공예의 현대화라는 어려운 작업에도 도전하고 있다. 그는 마치 수도자가 마음을 다스리며 도를 닦듯이 장시간 동안 반복 적으로 한지를 꼬아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예전에는 한지 자투리나 서화연습지가 지승의 재료였지만 지금의 작가들은 한지의 물성에 자신의 의지와 예술가적 영감과 조형의지를 담아낸다. 이영순은 지승공예의 원형을 찾는데 머물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며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도 시도 해왔다. 이미 만들어진 생활용품을 지승줄로 감는 현대적인 인테리어 오브제들은 현대라는 시대적 요구를 수용하면서 작가만의 고유한 언어를 사용한 작품들이다.

대학에서 섬유예술, 대학원에서 산업미술을 전공한 이영순은 1970년대에는 염색과 직조, 디자인, 설치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미술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창덕궁 내의 왕실 유물을 정리하면서 지승 더미를 처음 접했고 종이가 지닌 독특한 질감과 한국적 색감에 빠져들었다. 그로부터 40년간 한지를 꼬느라 지문이 닳아 없어지고 손가락이 휘어도 지승공예라는 어려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작업이지만 작가로서 이상을 추구하겠다는 의지가 그를 이끌었다.

손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그의 작품은 시공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한지 자체에서 우러나는 따뜻한 정서를 최대한 표현하며, 세련되고 힘차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전하는 작품들은 세계의 미적 보편성과 맞닿아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Biography

1972년 덕성여자대학을 졸업하고, 1980년 미국 디트로이트 센터 포 크리에이티브 스터디스(Center for Creative Studies)에서 수학하였다. 대학에서 섬유미술을 전공한 작가는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찾아 매진하면서 지승을 화두로 삼고, 오랜 기간 동안 지승 공예를 현대화하는 작업에 전념, 지승의 전통미를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현대적 오브제로 확장해 심미적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성신여대, 덕성여대 강사를 거쳐 연세대학교 디자인 자문위원과 동양그룹 디자인 건설 고문을 역임했다. 1986년 <종이조형>(서울 선화랑), 2002년 <이영순: 일상, 반복, 정체성>(금호미술관) 등의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2014년 <이영순-지승 작품전: 옛것 같은 새것, 새것 같은 옛것>(남서울생활미술관) 회고전을 가졌다. 2004년 성곡미술관, 금호미술관, 환기미술관에서 열리는 그룹전에 참여하였고, 전시에 참여했다. 다양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에도 참여하였는데, 대표적으로, 2004년 서울외국인학교 ‘호두까기 인형’ 무대디자인, 2005년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로비 디자인, 2007~8년 동양증권 옥외광고 프로젝트, 동양그룹 사옥 조경 디자인 등이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동양그룹, 금호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