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ramic Painting · 도자 페인팅
125 × 100 cm

한국의 도예가들은 작업하면서 한 번쯤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고려와 이조시대 도자의 전형에서 어떻게 벗어나 현대적인 기법을 구사할 것인가, 그리고 작품을 통해 어떻게 대중과 소통할 것인가는 흙을 만지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다. 고민만 하다가 스스로에게 안주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고민을 풀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도예가 이승희는 후자의 경우이다. 30여 년 간 도자작가 생활을 하면서 흙덩이를 주무르고 메치며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 해왔지만 작품에 자신을 담을 수 없다는 점, 대중과 소통할 자신만의 언어가 없다는 점에 한계를 느꼈다. 그는 일본에 보낼 작품을 만들던 중 불현듯 생각이 떠올랐다. 도자기가 꼭 입체 여야 할까? 도자기가 평면이면 안 되는 것일까?

2008년 그는 해답을 얻기 위해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자기 도시인 장시성의 징더전(景德鎭)으로 떠났다.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도자기를 생산한 곳으로 구도자처럼 떠난 그는 그곳에 틀어박혀 온갖 구상과 실험을 거듭했다. 그리고 흙, 불, 물, 빛, 공기, 바람을 찾았다. 미세한 표현을 할 수 있는 흙이 그곳에 있었다. 덩어리 작업보다 판 작업에 더 관심을 갖고 있던 그에게 한국의 흙은 너무 거칠어 휘어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통상 도자기로 납작한 평판을 만들 때 크기가 1m가 넘으면 휘거나 비틀어지기 쉽다. 습도나 온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뒤틀리거나 깨지기 일쑤다. 그가 도자기법으로 처음 으로 시도한 5㎜ 두께에 최대 2m까지의 판 작업을 구워낼 가마도 그곳에 있었다. 무작정 떠난 길에서 그는 창작의 열정과 아이디어를 발견하였고,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의 걸작 도자기들을 평면회화로 재현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작업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단순히 입체를 평면으로 옮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조형성을 살린 예술적 평면을 구현하고 싶었다. 실험을 수없이 반복하고 수많은 시행 착오를 거치기를 3년. 섬세한 감각과 끈질긴 인내심으로 그는 정통 도자기법으로 3차원의 도자기를 2.5차원의 평면에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평면 도자기 그림의 프레임 역할을 하는 판 자체까지 도자기로 구워 흙과 유약의 차이를 한 화면에 담아낸다. 전통적인 도자 기법으로 사각의 넓은 판을 만든 후 그 중심에 묽은 흙물을 70여 회 발라 평면적 두께감을 준다. 그리고 그 표면에 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티끌 높이의 결을 조심스럽게 긁어내 미묘한 입체감을 표현하며 선과 면을 고른다. 배경 부분은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워 흙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다. 도자기는 유약을 발라 고전 도자기를 그대로 재현한다. 그는 구워진 후의 색깔과 모양까지 세밀하게 계산해가며 작업 한다. 시각과 촉각, 그리고 시간과 노력을 통해 미세한 바람의 흐름과 빛의 반사를 정교하게 소화해내는 평면 도자 작품을 완성한다.

완성된 작품은 도자도, 회화도 아니다. 도자와 회화가 결합된 릴리프이다. 자연스럽게 도자기가 도드라져 보이면서 배경과 중심이 대비를 이룬다. 고전적인 도자 작품은 시간과 공간을 압축한 그의 반부조 작품을 통해 현대의 옷을 입고 재탄생한다. 단정하면서도 명료한 그의 평면 도자는 뉴욕과 홍콩의 아트페어에 출품돼 큰 관심을 모으는 등 세계적 으로 호평 받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뒤 다시 떠나기를 반복하고 있는 그는 날마다 새로운 것을 구상한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이 그의 손끝에서 탄생하고 있다.

Biography

1958년 청주에서 태어나 청주대학교 공예과를 졸업했다. 1993년 서남미술관에서 첫 개인전 <사유된 문명전>을 시작으로 2000년 <50인 군집 개인전>(청주 예술의 전당), 2005년 <소리를 담는 그릇전>, 2009년에는 베이징 아트사이드 갤러리, 2013년에는 뉴욕 신갤러리와 미국 팜비치 월리 핀레이(Wally Findlay) 갤러리, 서울 박여숙 화랑에서, 2014년 <나다 아웃 오브 나다(Nada out of Nada)>(갤러리 이배)까지 20여 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경주 선재미술관(현 우양미술관), 대전 시립미술관 등에서 개최한 그룹전과, 일본 지바 현립 미술관, 후나바시 시민 갤러리 등의 그룹전 에 참여하였고, 2003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특별전>과 같은 국제 행사와 화랑미술제, <한국국제아트페어>, <토쿄 아트페어>를 비롯한 국내외 아트페어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현재 중국 최고의 도자기 도시인 장시성 (江西省)의 징더전(景德鎭)에 머물며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주식회사 멕켈란, 로드랜드 골프장, 스페이스 몸,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