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ver Inlaid Brazier · 은입사 화로
18.5 × 18.5 × 18.5 cm

역사가들은 고려시대 공예기술의 정수로 은입사기법을 꼽는다. 은입사는 예리한 정으로 철판이나 동판의 표면에 홈을 판 뒤 금은동의 재질에서 뽑아낸 얇은 실을 홈 사이에 끼워 넣은 후 두드려 바르게 펴는 우리의 전통기법이다. 화려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중시했던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했다. 특히 불교가 국가의 종교로 번창했던 고려시대 사찰의 향로 등 불교 용품에 많이 사용되었고, 집안의 값비싼 장식품, 귀족들이 사용하는 담배합 등에 사용되었다. 화려한 장식기법의 특성상 조선시대 들어서는 양반들의 사랑방에 놓였던 필통이나 문진 등 문방구, 향로와 촛대 등 고급 생활용품에 많이 쓰였다. 은입사 장인들의 혼이 담긴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의 금속공예실 진열장을 채우고 있다.

1000년이 넘게 전해져 내려온 은입사 기법은 고된 노동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 강도 때문에 현대에 들어서는 그 맥이 근근이 이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경노 장인은 국가 에서 공인한 문화재 수리기능자로 근근이 삶을 이어가면서 전통을 이어가는 몇 안 되는 인물 중의 한 명이다.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로 올라온 뒤 고향 선배의 소개로 고가구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공장이 운영난으로 문을 닫고 막막해진 상황에서 우연히 서울시 지정 입사장 최교준의 문하에 들어가게 된 것이 40년 전의 일이다.

은입사 작업의 기본은 순도 99%의 은을 1000도에서 녹여 판에 부어 3㎜ 정도로 얇게 밀어 작두로 자르고 이것을 틀에 넣어 열을 가해가면서 가늘게 실로 뽑아내는 것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철판이나 동판에 정으로 쪼아 실을 박을 곳의 자리를 잡은 뒤 그것을 박아 넣고 펴야 한다. 정 질을 치밀하고 촘촘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그래야 은실이 제대로 박히고 세밀한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작은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다반사이다. 제대로 된 문헌자료도 없고, 박물관의 유물 보수하는 일 말고는 찾아주는 이도 없다. 작품 하나를 제작하는 데 만 번 이상을 두드려야 하고, 촘촘 하게 박아 넣는 작업을 하느라 눈까지 다 버렸다. 이경노는 육체적 고통과 시력저하로 인해 한때 다른 일을 고려해보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한 번 일을 잡으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은입사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없었다고 한다.

영등포구 독산동 후미진 건물의 계단 밑이 그의 공방이다. 정 작업이 만들어내는 소리 때문에 항상 외진 곳을 찾아 다녀야 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조수도 없이 혼자 일해왔지만 다행히 산업인력공단의 숙련기술전수자로 선정돼 35살 된 아들에게 기술을 전수해줄 수 있게 됐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는 꾸준히 옛 장인들이 남긴 작품 사진을 보며 이를 되살린 작품을 발표해왔다. 이경노는 은입사 장인들 사이에서 도 정 질을 가장 완벽하게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세밀한 표현력과 함께 은실이 촘촘히 박힌 그의 작품은 마치 기계로 만든 것처럼 일률적이면서도 손맛이 살아있다.

Biography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로 올라온 뒤 고가구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공장이 운영난으로 어려워진 상황에 우연히 서울시 지정 입사장 최교준 선생을 만나 그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1987년 국가 지정 문화재 수리 기능자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은입사합, 답배합 등으로 장려상, 특별상 등 10차례 이상 수상하였고, 1996년에는 철제입사염 주합으로 대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작품 하나를 제작하는 데 만 번 이상을 두드려야 하는 작업 성격 때문에 주변의 소음으로 인한 불평 등으로 작업실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40년 동안 꾸준히 외진 독산동 작은 공방을 지켜오고 있다. 현재 산업인력공단의 숙련기술전수자로 선정되어 아들에게 기술을 전수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