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lted Clothes · 누비 중치막
132 × 127 cm

순수한 우리말인 ‘누비’는 두 겹의 옷감을 포개놓고 세로 방향의 곧은 줄이 지도록 바늘로 한 땀 한 땀 고정시키는 한국 전통 바느질법이다. 청빈한 삶을 사는 스님들의 낡고 헤어진 것을 기워 입는다는 ‘납의 장삼’에서 유래한 누비는 주로 방한복에 쓰였고 침구류나 소품에도 널리 쓰인 바느질 기법이다. 옛 사람들은 옷 입을 사람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며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하면 그 마음이 옷에 스며들어 입는 이를 지켜 준다고 믿었다. 장식이나 기교를 버리고 오직 홈질 하나로 만들어가는 누비 바느질은 한 땀도 건너 뛸 수 없고, 마음이 고르지 못하면 한 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에 단순한 바느질 기법이 아니라 우리 민족 고유의 종교와 인내하는 마음을 상징하는 정신문화의 한 줄기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기계화와 현대화 속에 점차 우리의 삶에서 사라졌고, 안타깝게도 전통방식의 누비옷 제작의 맥도 끊어졌다.

1952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바느질을 익힌 김해자는 한복 짓는 일을 하던 중 누비 승복을 본 후 누비의 매력에 빠졌다. 박물관을 찾아 유물과 도록을 보며 독학으로 누비를 공부하다 대한제국 침방나인으로부터 구전으로 전해진 전통 누비기법을 알고 있던 스님을 찾아 3개월 정도 배운 뒤 본격적으로 누비에 몰두하게 되었다. 하지만 승복 제작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일반인의 의생활과 밀착한 누비옷을 만들기 위해 전통복식박물관을 찾았다. 유물을 스승삼아 정진한 결과 80년대 중반 중요민속 문화재 114호인 과천 출토 광주이씨 의복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유물의 바느질 땀 간격은 3㎜. 하지만 김 씨는 땀 간격을 2.8㎜까지 누빌 수 있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1992년 전승공예대전에 재현한 누비옷을 출품해 국무총리 상을 수상했다. 사라졌던 우리의 전통 누비를 세상에 다시 선보인 이 시대의 장인으로 누비의 저변 확대에 노력하고 있는 그는 1996년 중요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107호 누비장 으로 선정됐다.

“누비옷은 우리 민족 정신세계의 하나인 정성의 산물입니다. 누비를 기울 땐 온갖 잡념을 끊고 오직 입는 사람의 무병장수, 여의 성취, 만수무강 등을 비는 믿음을 갖고 짓습니다.”

국내 유일무이한 ‘누비장’인 그는 비우고 비워낸 마음의 끝자락을 바늘을 통해 손끝으로 옮겨내고 있다. 그는 자신이 복원한 전통누비법을 자신만의 재산으로 여기지 않는다. 지난 20여 년간 누비를 배우려고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아낌없이 기술을 전수하는 한편 누비장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전통누비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Biography

1952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독학으로 박물관에 있는 유물과 도록을 보고 공부하던 그는 1992년 전승공예대전에 누비옷을 출품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중요민속문화재 제114호 과천 출토 광주이씨 의복을 재현한 것으로 첫 출품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였다. 1996년 누비옷을 제작한 지 4년 만에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107호 누비장으로 선정됐다. 성균관대학교 전통복식과정 궁중 복식연구원과 지도교수로 활동하였고, 현재까지 부산대학교 생활환경 대학 한국전통복식연구소 개원교수직을 맡고 있다. 1984년 문화재보호재단 에서 주최하는 경복궁 전통공예관 특별초대전 전시를 시작으로, 공평아트센터, 가나아트센터,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기획전, 일본 요코하마 퀼트 박람회 등 50여 회 전시회에 참여하였고, 북경 한국문화원 초빙강의, 미국 뉴욕 소사이어티 갤러리 초청전, 서울 경인미술관 천년보옥 한국의 누비 <저고리전>, 경주박물관 중요무형문화재 누비 실연 및 강연과 더불어 왕성하게 누비옷을 짓고 있다.